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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프라다 이야기 Prada Brand Story

패션/브랜드 역사

by ALENFORNIA 2022. 11. 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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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da Brand Logo

기업명 : Prada S.p.A.

 

창립주 : 마리오 프라다 (Mario Prada)

현직 CEO :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Patrizio Bertelli)

본사 : 이탈리아 밀라노 Via Antonio Fogazzaro, 28, 20135

설립일 : 1913년

주요 소재 : 섬유, 가죽

 


 

 

Fratelli Prada 1913

 

 매해 열리는 프라다 패션쇼는 세계적으로 가장 획기적이고 트렌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프라다의 패션쇼만을 보는 것으로도 머지않은 미래에 유행할 패션들을 대부분 알아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패션쇼로 일컬어진다.

모델들 가운데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하거나 최고의 모델들만이 설 수 있는 프라다 패션쇼는 모델들 사이에서 특히나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는데, 쇼에 서는 것만으로도 다른 명품 브랜드의 구애를 받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최고의 모델이지만 프라다 패션쇼에 초빙되지 못하면 자신을 한물간 모델이라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라고 회자한다.

 

프라다는 패션쇼 이외에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영화, 국내 기업 LG와 협업하여 만든 '프라다 폰' 등으로 국내에서도 매우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의 활동들과 패션에서의 입지가 매우 두터웠던 2000년대 초반에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구찌를 넘어선 인기를 자랑했었으며 당시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구찌보다 프라다에 더 좋은 평가를 주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프라다의 탄생"

 

 

Mario Prada

 

프라다의 위상을 현재의 상위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로 만들어낸 데에는 창립자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의 공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지만 미우치아 프라다의 프라다가 있기 이전 프라다의 기둥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마리오 프라다라고 할 수 있다.

1913년 마리오 프라다는 동생 마르티노 프라다와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작은 가죽 제품 상점 마르텔리 프라다를 개업하며 프라다의 시작을 알린다.

마르텔리 프라다는 여느 럭셔리 브랜드와 비슷하게 가죽을 이용한 트렁크와 액세서리를 판매하며 성장했고 6년이 흐른 1919년에는 이탈리아 왕실에 납품하는 업체로 선정되며 당시 이탈리아를 통치했던 사보이 왕실이 허가한 로프 형태의 문양을 프라다 로고에 적용하며 귀족들과 중상류층에게 브랜드의 위치를 각인시키고 머지않아 이들이 애용하는 업체로 거듭나게 되면서 럭셔리 브랜드로써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마리오 프라다는 자신의 회사에 여성이 영업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다고 전해지며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여성은 구성원으로서의 업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회사를 이어가야 할 마리오 프라다의 하나뿐인 아들은 정작 사업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고 어쩔 수 없이 그의 딸 루이사가 20년간 사업을 이어받아 경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리오 프라다의 여성 구성원이 없는 회사라는 경영 원칙은 깨지게 되었다.

후에 루이사가 이끌던 회사를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가 이어받게 되면서 마리오 프라다의 이러한 원칙이 틀렸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다.

 

 


"미우치아 프라다"

 

 

Miuccia Prada

 

루이사 프라다의 경영은 프라다의 역사에서도 마땅히 평가받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가 프라다를 이끌기 전까지는 프라다의 위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해 있었고 그 뒤를 이어받은 미우치아 또한 디자이너나 브랜드 경영 같은 분야와는 거리가 먼 전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라다의 내적, 외적인 부분에서 부정적인 동향에 대한 의견이 빈번했다.

미우치아에게 프라다는 외가 쪽 가문이기 때문에 본래는 프라다의 성씨를 쓰지 않지만, 프라다를 잇기 위해 프라다의 성씨로 바꾸어 경영권을 승계했으며 그녀의 의지를 통해 향후 프라다에 닥칠 엄청난 변화는 이전의 부정적 의견들이 무색할 만큼 엄청난 위상의 브랜드로 끌어올리는 데에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1978년 미우치아 프라다가 프라다를 이끌면서 프라다는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획기적인 브랜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미우치아는 소재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고 패션에 대한 기본적인 틀이 적용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 같은 이유로 기존에 가방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던 가죽 대신 낙하산에 사용된 '포코노 나일론'을 사용한 가방을 출시하게 되어 캐주얼 룩에 매치하기 쉬운 단순한 디자인과 쉽게 찢어지지 않는 탄탄한 소재로 큰 인기를 끌며 파산 직전의 회사를 반등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일련의 사건을 통해 평생의 동반자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를 만나게 되면서 프라다의 위상은 끝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게 되는데 사업 수완이 뛰어났던 베르텔리가 경영권을 책임지고 미우치아가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을 보다 깊이 있게 부여받으면서 프라다의 분야 확장과 창의적인 패션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본래 가방 제작을 업으로 삼았던 프라다에 베르텔리는 패션 전 분야를 통틀어 제품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미우치아는 이러한 의견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자신의 장점인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통한 획기적 디자인을 패션쇼에 녹여내며 프라다의 브랜드 가치를 꾸준히 상승시켜 나갔다.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얻은 미우치아는 자신의 이름을 딴 '미우 미우' 브랜드를 1993년 새롭게 론칭하였으며 프라다와 같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끌어내 가고 있다.

 

 


"프라다의 품목"

 

가죽 가방으로 시작해 패션의 전 분야를 아우르기까지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행보를 이어갔던 프라다이지만 미우치아와 베르텔리에 의해 대부분 만들어진 현재의 프라다는 미우치아가 프라다를 반등의 계기로 이끈 포코노 백팩, 토트백 등이 여전히 인기 있는 상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미우치아 프라다가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을 확실시하며 탄생한 갤러리아 백이 오늘날 프라다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Prada Galleria bag

 

갤러리아 백 이외에도 시즌별 패션 상품들은 매번 세계를 주목시키며 트렌드를 다른 명품들과 비교해 봐도 가장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https://www.prada.com/kr/ko.html

 

프라다 공식 명품 사이트 : 의류 & 액세서리 온라인 | PRADA

프라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남성 및 여성 가방, 의류, 신발, 액세서리 컬렉션을 확인하세요.

www.pr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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