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아르마니 이야기 Armani Brand Story
기업명 : Giorgio Armani S.P.A
창립주 :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 Armani)
현직 CEO :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 Armani)
본사 : 이탈리아 밀라노 Via Sant'Andrea, 9, 20121
설립일 : 1975년
주요 소재 : 섬유
의대 출신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창립한 아르마니는 현재까지도 그들의 디자인을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전부 담당하는 명품 브랜드 가운데 한 디자이너가 가장 오랫동안 브랜드의 명운을 책임진 특별한 럭셔리 브랜드로 설명한다.
70년대 미국 패션계에 붐을 일으키며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로 알려진 아르마니는 정장을 주축으로 한 다양한 모던 룩을 선보이며 디자인을 총괄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재킷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으며 다양한 사업 분야로 브랜드 확장을 시도하여 대부분 성공시키며 패션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브랜드 중 하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1934년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 피아첸차에서 태어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전란의 시기를 겪으며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가문 부흥의 염원을 안은 부모님의 뜻에 따른 필사적인 학업 정진 끝에 밀라노의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어린 시절 남다른 생각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의 소품이나 패션에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을 지적하고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 어렸을 적부터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완벽주의 성향은 밀라노 의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좀처럼 발현되지 못했는데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그 이유를 자신이 이 일에 흥미가 없기 때문으로 인식하고 2년 뒤에는 의대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능력과 흥미에 관한 고민으로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으로 인해 성인이 되면 군에 징집되는 법에 따라 입대하게 된 그는 전공을 통해 의료보조원으로 복무를 하였는데 이 시기 자신의 방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며 전역 후에는 당장의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1954년부터 리나 생티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백화점에서는 쇼윈도 디스플레이 업무 담당을 시작으로 광고 판촉부의 보조를 거쳐 남성복 매장에서 전시장 디자인과 패션 스타일 리스트를 겸하며 시각, 패션과 어느 정도 연이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며 안목을 넓혔다.
남성복 매장에서 일을 할 때 완벽주의 성향을 가장 잘 발휘하며 인정받았던 그는 어느 날 같은 매장에서 일하던 지인의 소개를 받아 니노 세루티의 디자이너로 활동할 것을 권유받는데 진로에 고민이 있었던 그에게 이러한 권유는 기회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1963년부터 백화점을 나와 니노 세루티의 디자이너로 들어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다.
니노 세루티는 럭셔리 남성 정장을 주요 산업 분야로 내세운 이탈리아 남성복 디자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로 그의 곁에서 패션 디자인 업무를 배우게 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디자이너로서의 엄청난 정진을 이루게 된다.
처음엔 니노 세루티의 보조 업무를 담당하였지만, 차츰 실력을 갖추게 되면서 전문적인 패션 디자이너로서 발돋움하게 된 그는 비록 해당 분야의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니노 세루티는 그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차렸고
니노 세루티의 새로운 남성복 라인 히트맨을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게 맡기는 등 그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기존의 남성복에서 볼 수 없었던 히트맨 라인은 이전의 소재보다 가볍고 편안한 정장을 의도하여 만들어진 정장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고 이러한 평판을 통해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니노 세루티에서 7년간 패션 디자인을 담당하며 성장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니노 세루티를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아뜰리에를 열기 위해 분주했지만, 자본금 문제로 어쩔 수 없이 3년간 프리랜서로서 활동하며 외주 업무를 맡게 되며 힐턴, 로에베 등 브랜드들의 디자인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1972년 아뜰리에를 열기 직전 자신의 이름으로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세간의 주목을 끌어냈고 이듬해 197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뜰리에를 열어 아르마니에서의 남성복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생산하였다.
아르마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완벽주의 성향 덕분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상하고 지켜오는 데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으며 독보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이후에는 70년대 미국 패션계에서 아르마니의 의상들이 주목받으며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큰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80년대에는 리처드 기어의 의상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조국 이탈리아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내며 아르마니는 당대 최고의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거듭나게 된다.
"아르마니의 변화"
1975년부터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함께했던 동업자 세르지오 갈레오티는 그의 파트너이자 친구였고 이듬해 1976년에는 'Giorgio Armani S.P.A'를 설립해 공방을 넘은 하나의 기업으로서 경영 방식을 전환하여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디자인을 총괄, 세르지오 갈레오티는 경영의 전반적인 부분을 책임지며 아르마니를 이끌어갔다.
세르지오 갈레오티가 경영에 관한 부분을 담당해준 덕분에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디자인에 전념할 수 있었고 덕분에 회사는 나날이 성장했다.
끝없는 성장으로 회사가 번창하며 어느덧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서 명성을 일구어냈지만 1985년 세르지오 갈레오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아르마니에 첫 번째 경영 위기가 찾아온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러한 위기를 독자 운영체제로 바꾸어 경영과 디자인 모든 부분에서 활약하는 묘책을 선보였는데 아르마니의 생산을 담당했던 공장들을 인수하고 자체 운영 생산으로 의류 생산 방식을 전환하여 자신이 경영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회사를 변화시켰고 덕분에 회사는 곧바로 안정을 찾게 된다.
아르마니는 이후 여러 산업 분야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구었는데 남성복을 넘어 여성복 컬렉션을 론칭하고 시계, 향수, 언더웨어, 스포츠 웨어 등 활동 폭을 넓혀 나갔으며 연령층에 따른 세컨드 브랜드들로 상품을 분류하여 판매하는 전략으로 소비자들과 함께하는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키워나갔다.
시대에 따라 브랜드들이 통폐합을 거치면서 현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엠포리오 아르마니,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EA7 등의 브랜드가 운영되고 있다.
"아르마니의 품목"
럭셔리 남성 정장을 토대로 성장한 회사로 모던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르마니는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시대에 맞추어 판매 전략이나 브랜드의 통폐합을 거쳐 가치를 유지하는 면모를 보이며 소비자들의 신임을 얻어왔다.
현재 패션에 관한 다양한 산업 분야로 나아가며 화장품과 같은 화학 제조나 호텔 운영과 같은 곳에서도 활약하며 아르마니의 명성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