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까르띠에 이야기 Cartier Brand Story
기업명 : Cartier International SNC
창립주 : 루이 프랑수아 카르티에 (Louis-Francois Cartier)
현직 CEO : 시릴 비그네론 (Cyrille Vigneron)
본사 : 프랑스 파리 37 Rue Boissy d'Anglas, 75008
설립일 : 1853년
주요 소재 : 귀금속
명품의 특징은 대부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의 이념이 꾸준히 전달되고 품질과 기술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며 꾸준히 가치를 상승시켜온 부분에 있다고 말한다.
꾸준히 지켜온 가치에 따라 브랜드의 수위를 정한다면 까르띠에는 귀금속, 액세서리를 다루는 산업에 있어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브랜드이기에 이러한 척도의 최정상에 위치한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까르띠에에서 나온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 산토스와 믿음, 사랑, 우정을 의미하는 3개의 링이 조화롭게 얽혀 있는 트리니티 링 등 오래전부터 이어오고 있는 그들의 제품은 무려 1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꾸준히 리뉴얼 작업을 통해 재탄생하고 있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결혼 예물이나 큰 행사에 참석할 때 대부분의 사람이 까르띠에를 손꼽을 만큼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국내 귀금속 매출에 있어서는 까르띠에가 매번 정상에 있을 만큼 뛰어난 인지도를 자랑한다.
까르띠에의 시작은 무려 19C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라는 인물에 의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매우 유서 깊은 이야기로 시대의 변화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린 몇 안 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유구한 역사의 시작,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화학 통 제조를 업으로 삼던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까르띠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였던 28세가 되던 해에 시계 장인이었던 아돌프 피카드의 밑에서 수습 생활을 하게 된다.
아돌프가 운영했던 가게는 작은 시계방이었는데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자 까르띠에는 자신이 몸담았던 아돌프의 작은 시계방을 인수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메종 까르띠에로 그곳을 운영하게 된다.
이것이 까르띠에의 시작인데 까르띠에에게는 사실 손재주만큼이나 뛰어난 안목과 사업수완이 있었고 작은 규모에서 시작했던 시계방은 귀금속까지 다른 제조업체에서 들여오면서 다양한 제품군을 갖춘 귀금속, 액세서리 전문업체로 바뀌었다.
초기 까르띠에는 시계만 직접 제작해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자체적인 기준을 규격화할 수 있었지만, 귀금속은 다른 제조업체를 통해 공수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지만 까르띠에의 안목이 워낙 높았던 탓에 귀금속 제품들은 품질이 좋지 않으면 절대로 자신의 가게에 들이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이후 사회의 안정화가 진행되고 있을 시점에서 안목 높은 귀족들이 다시 그들의 사교 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귀금속과 액세서리, 패션 등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까르띠에 매장은 까르띠에의 높은 안목으로 인해 이미 귀족들의 눈에 맞추어진 상품들로 가득한 곳이었고 때문에 많은 귀족들이 다녀가면서 매장은 순식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귀족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인기는 곧 프랑스 황제의 사촌인 마틸드 공주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는데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 매장을 직접 방문하여 까르띠에의 상품들에 매료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까르띠에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고 까르띠에는 프랑스를 넘어 국제적인 오뜨 꾸띠르 패션 하우스로 성장하게 된다.
까르띠에의 성장과 함께 마틸드 공주의 후원으로 인해 매장을 더 좋은 위치로 옮길 기회가 생겼고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 그의 가게를 새로 확장 이전하면서 자신의 첫째 아들 알프레드 까르띠에에게 까르띠에 매장을 이어갈 후계 구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는 자신의 아들 알프레드 까르띠에와 동업의 형식으로 같이 일하면서 사업과 기술을 조금씩 물려주고 끝에 알프레드에게 경영권을 완전히 물려주며 까르띠에 가문 경영의 시작을 알린다.
"까르띠에 가문"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는 그의 사망 직전까지 경영권의 일부를 쥐고 있었지만 경영권이 대부분 그의 아들에게 넘어갔기에 까르띠에의 경영은 알프레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알프레드는 귀금속도 온전한 까르띠에의 디자인으로 만드는 것과 사업 확장에 더욱 착수했고 이에 따라 까르띠에는 귀금속, 액세서리 전반적인 부분을 독자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에 성공하며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적 인기와 그의 능력으로 까르띠에 브랜드의 안정적인 명성을 유지하며 세계적인 명품 부띠끄 하우스로 거듭나는 데에 큰 공헌을 하며 귀금속 브랜드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이후 피에르, 루이 J, 자크 까르띠에가 까르띠에의 경영권을 이어가며 까르띠에 가문의 명성을 알렸으며 100년이 넘어서도 인정받는 예술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내 정상의 가치를 유지했다.
"까르띠에의 품목"
까르띠에는 오늘날 까르띠에 가문의 손을 떠나 리치먼드 그룹에 의해 경영되고 있는데 그 명성은 변하지 않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 까르띠에 가문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들도 꾸준한 재해석을 통해 대표적 상품들로 이름 올리고 있으며 귀금속, 시계, 액세서리 등을 꾸준히 취급하며 품목마다 상징성 있는 상품들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산토스, LOVE, 발롱 블루 등이 있다.
https://www.cartier.com/ko-kr/home
Cartier® Official Website - Jeweler and Watchmaker since 1847
서울에 자리한 까르띠에의 새로운 집, 빛과 개방감을 담은 환대의 공간
www.carti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