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디올 이야기 Dior Brand Story
기업명 : Christian Dior SE
창립주 : 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
현직 CEO : 피에트로 베카리 (Pietro Beccari)
본사 : 프랑스 파리 30 Av. Montaigne, 75008
설립일 : 1946년
주요 소재 : 섬유, 가죽
2차 세계대전 이후 샤넬과 더불어 프랑스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찬 디올에 의해 설립된 디올은 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Christian Dior'과 성만 딴 'Dior'를 동시에 사용하지만 보통 'Dior'로 불리며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디올은 세계적으로 꾸준히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였지만 국내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알려지고 인기 있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국내의 유명인 블랙핑크 지수, 방탄소년단, 김연아, 수지 등을 통한 홍보 활동으로 인해 MZ세대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하며 단기간에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동시에 매출도 급성장하면서 국내에 매장 수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으며 최근 청담동에 아시아권 최대 규모의 플래그쉽 스토어 '하우스 오브 디올'까지 개장하며 국내 공략에 대한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디올의 특징은 화려하고 세련된 럭셔리로 귀족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며 프랑스의 같은 럭셔리 브랜드 샤넬과는 또 다른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
"크리스찬 디올"
프랑스 노르망디의 그랑빌에서 태어난 크리스찬 디올은 잘 나가는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에는 정원이 있었고 어머니는 화려한 장신구와 드레스로 치장하고 다녔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디올은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하였는데 꽃의 이름과 향을 외우고 다니며 꽃에 대해 따로 기록해둘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으며 귀족과 같이 화려하게 치장한 어머니를 보고 자라 럭셔리함을 기본적인 여성상으로 인식하며 성장했다.
평소 건축과 예술에도 관심이 깊던 디올은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도움으로 작은 미술관을 열어 관리했지만 대공황에 의해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미술관은 곧 문을 닫게 된다.
건축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지만 형편이 어려워지자 살기 위한 방편으로 그의 친구에게서 패션 드로잉에 대해 새로 배워 모자와 드레스, 오뜨 꾸띠르 크로키를 패션 회사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이후 로버트 피게의 양장점에 들어가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활동을 이어가는 듯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디올은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한동안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피게의 양장점에서 일하게 된 디올은 이후 뤼시앙 르롱 등의 업체를 전전하며 디자인 활동을 다시 이어갔다.
그러던 1946년 섬유 제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마르셀 부삭에게서 자금을 마련한 크리스찬 디올은 프랑스 파리의 30 몽테인에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를 처음 오픈하며 자신의 독립과 함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패션 하우스를 오픈한 디올은 곧바로 디올의 컬렉션 '뉴 룩'을 발표한다.
뉴 룩은 여성의 형태와 실루엣을 활용한 럭셔리함과 관능미로 세련된 현대식 여성 의류를 선보인 컬렉션으로 기존에 없던 스타일과 화려함의 재해석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부정적인 시선도 배제할 수 없었는데 뉴 룩이 발표된 시점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여파가 아직 온전히 가라앉지 않은 직후였기 때문에 허무하고 상실감에 젖어있던 일부 대중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는 충분하였다.
이러한 일부 대중들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뉴 룩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과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설렘으로 여성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 주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냈다.
이후 디올은 여성만이 가진 선의 형태를 활용한 다양한 라인을 차례로 선보이며 패션 하우스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게 된다.
크리스찬 디올은 패션과는 별개로 향을 중요시하기로 유명했다.
어렸을 적부터 꽃과 향에 관심이 많았던 디올이었기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은 패션보다도 향이라는 이야기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러한 의미로 그는 패션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조향사라고 말하며 디자인 이외에도 향을 만드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였는데 패션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디올의 컬렉션 뉴 룩 이후 디올은 자신의 누이를 떠올리며 만든 향수 '미스 디올'을 발표하며 패션뿐만이 아닌 여성미 자체에 주목한 디올의 이념을 드러냈다.
실패 없는 성장을 하며 꾸준히 브랜드의 가치를 성장시키던 크리스찬 디올은 52세의 나이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주에서 심장마비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후계자 이브 생 로랑"
디올의 경영진은 갑작스러운 크리스찬 디올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며 뒤이을 후계자를 정하기에 나선다.
크리스찬 디올은 그가 사망하기 전부터 특유의 천재성에 매료되어 애지중지 키우던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프랑스의 차세대 패션계를 이끌게 될 '이브 생 로랑'이었다.
디올조차 매료되었던 이브 생 로랑의 천재성은 지금은 신화적 디자이너로 거론되는 칼 라거펠트조차 제치고 디자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던 유명한 일화로 인해 이미 프랑스 내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생 로랑이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 올라 활동하게 된 나이는 불과 21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
디올은 크리스찬 디올의 사망 이후 힘겨운 길을 걷고 있었는데 매출이 크게 하락하는 등의 여러 변수로 휘청이고 있던 디올을 어린 수석 디자이너 생 로랑이 지휘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며 디올은 금방 이전의 명성과 가치를 되찾고 심지어 생 로랑을 곧 위대한 디자이너로 만들어주는 계기로 전환되었다.
생 로랑이 처음 발표한 디올의 새로운 컬렉션 '트라페즈' 라인은 사다리꼴 모양의 새로운 패션으로 주목받았고 디올의 전성기를 다시 한번 끌어내면서 많은 찬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후 국적 문제로 군 복무를 해결하지 못한 이브 생 로랑은 징집되어 디올을 떠나게 되며 이후 많은 디자이너가 디올을 거쳐 가면서 명성과 가치를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디올의 품목"
디올은 섬유 소재로 제작된 여성 패션과 디올 맨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한 남성 패션으로 크게 나누어지며 크리스찬 디올의 시기부터 꾸준한 역사를 자랑하는 여성 패션 군에서 만들어내는 제품들이 디올의 주요 품목들로 자리 잡았다.
가방, 오뜨 꾸띠르, 신발, 모자, 향수 등 다양한 여성용 품목 중에서도 디올 최초의 향수 '미스 디올'과 가방 '레이디 디올'은 주력 상품으로 손꼽힌다.
디올 공식 웹사이트 | DIOR
디올 공식 웹사이트. 남성과 여성을 위한 패션, 향수, 액세서리 및 크리스챤 디올의 모든 세계를 만나보세요.
www.di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