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구찌 이야기 Gucci Brand Story
기업명 : GUCCI
창립주 : 구찌오 구찌 (Guccio Gucci)
현직 CEO : 마르코 비자리 (Marco Bizzarri)
본사 : 이탈리아 피렌체 Via de' Tornabuoni, 73r, 50123
설립일 : 1921년
주요 소재 : 가죽, 섬유, 금속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구찌는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브랜드이자 최근 세계 브랜드 가치 평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제적으로도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이다.
상류층을 위한 가죽 용품을 판매하던 가게였던 구찌는 오늘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트렌디한 럭셔리를 선보이며 시대에 알맞은 디자인으로 사랑받으며 명품의 선두 주자로서 패션계를 끌어내 가고 있지만 구찌가 이렇게 현시대에 남아 있는 것이 기적 같은 정도로 그들이 걸어온 역사는 매우 파란만장했다.
구찌의 이러한 이야기는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을 정도로 다이내믹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사건들이 브랜드의 가치를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구찌오 구찌"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밀짚모자를 만들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구찌는 밀짚모자를 이용한 사업은 미래가 없음을 느끼고 미래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업을 찾아 나서기 위해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세계 최고급 호텔이었던 사보이 호텔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게 된다.
꾸찌오 구찌는 호텔을 이용하던 상류층들 사이에서 그들이 애용하는 것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가장 보편적인 품목이었던 고급 여행 가방과 액세서리에 관심을 보이며 호텔을 나와 고향 피렌체의 가죽공방에 들어가 가죽을 다루는 기술을 20년가량 공부한다.
당시 피렌체의 가죽 소재 기술은 세계에서 최고로 평가받던 시기였다.
상류층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 성공의 의지를 쌓은 구찌는 공방을 나와 곧장 피렌체에 작은 가죽 용품점을 개업한다.
개업 초반 구찌는 가죽 소재의 가방을 주로 만들며 같은 소재를 이용한 말의 안장이나 용품들을 조금씩 다루는 가게 정도였는데 입소문을 타며 상류층이 찾는 가게로 조금씩 거듭나기 시작하면서 실력 좋은 장인들을 직원으로 영입하기 시작했고 액세서리 등과 같은 다양한 산업 분야로 가게를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공격적인 행보로 인해 구찌는 빠르게 피렌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게로 거듭났고 인기에 힘입어 이탈리아의 중심지인 로마의 중심 거리에도 매장을 열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구찌오 구찌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사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고 그의 아들들이 이 시기부터 구찌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면서 가족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렇게 한창 잘 나가던 구찌는 창립 이래 첫 위기를 맞이하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에 가죽 소재의 공급이 저조해지면서 주변에서 가죽을 다루던 가게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으며 주요 소재에 대한 변경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구찌는 일본에서 들여오는 대나무를 활용한 새로운 소재로 가방을 만들며 위기를 타개하였는데 대나무를 사용한 소재가 독특했던 만큼 다행히 상류층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구찌의 위기는 기회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기막힌 아이디어는 구찌오 구찌의 장남 알도 구찌에 의한 것이었으며 장남 알도는 대나무 소재 이외에도 캔버스 소재로도 가죽 소재를 대체할 것을 권유하며 구찌를 더욱 성장시켰는데 이러한 성장은 구찌를 미국 뉴욕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나는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찌오 구찌는 그의 퇴임 이전 구찌의 상징이 된 '더 웹'을 만들며 그들만의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발표하게 된다.
녹색, 적색, 녹색의 삼선으로 이루어진 더 웹은 이후로 구찌의 전통적 디자인으로 여겨지며 그들의 제품 이곳저곳에 녹여내며 꾸준히 활용되고 있는 정체성과 같은 개념으로 여겨진다.
"가족 경영의 시작과 몰락"
구찌오 구찌의 사망 이후 장남 알도 구찌와 배우 출신의 막내아들 로돌프 구찌가 구찌의 경영권을 승계하며 구찌를 이어 나가게 된다.
장남 알도 구찌는 자신의 아버지 구찌오 구찌의 앞 글자를 따서 'GG'라는 구찌의 시그니처를 만들어 내는 등 구찌의 명성을 적극적으로 드높인 데에 반해 막내 로돌프는 알도에 비해 비교적 묵묵하게 구찌를 이끌어 갔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공동 경영체제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구찌오 구찌가 남긴 구찌를 꾸준히 성장시킨 형제는 예상 밖의 위기에 몰려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알도 구찌에게는 세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 중 장남이었던 파올로 구찌가 평소 자신의 아버지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한 로돌프 구찌가 아버지 알도와 같은 지분을 가진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며 이 같은 불만을 여지없이 드러냈고 아버지 알도는 형제 로돌프와 상의 끝에 로돌프의 아들 마우리치오에게 후계를 맡기게 되면서 몰락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파올로는 구찌를 나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파올로 구찌를 브랜드로 내세워 구찌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한 저가 브랜드로 구찌의 가치를 떨어뜨렸으며 구찌를 승계한 마우리치오는 아내였던 파트리시아의 끝없는 욕심과 욕망에 못 이겨 이혼하고 후에 악의를 품은 파트리시아에게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구찌를 이끌던 구찌 가문이 서로 간의 욕심에 의해 몰락하고 투자처였던 Investcorp Holdings BSC에 의해 인수되며 구찌는 구찌 없는 구찌로써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새로운 시작과 현재"
여러 사건으로 피폐해진 구찌는 완전한 몰락을 문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천재 디자이너 톰 포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하며 과거의 구찌 품목들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갔고 이는 다시 구찌를 반등의 길로 이끌며 이전의 위치까지 가치를 회복시키기에 이른다.
톰 포드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구찌를 바라보는 이미지를 잡는 등의 구찌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확립시키는 모든 과정을 도맡았는데 이 같은 행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구찌를 구원한 인물로 엄청난 명예와 인기를 누리게 된다.
후에 톰 포드가 떠나고 마르코 비자리와 알렉산드로 미켈레라는 걸출한 인물들을 데려오며 트렌디한 명품 브랜드의 기준이 된 현시점의 구찌는 지금도 과거를 잊은 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구찌의 품목"
구찌는 현재 잡지, 패션쇼, 광고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품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트렌디함과 럭셔리의 이미지를 어우러지게 녹여낸 부분에 있어서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최고라 평가받는 브랜드이다.
또한 패션에서 소재를 가리지 않고 제작된 의류, 액세서리, 가방, 시계, 지갑, 신발 등 폭넓은 스펙트럼을 활용해 다양한 디자인도 선보이는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무엇하나 집어서 구찌 최고의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품은 없지만 그래도 유명한 상품을 하나 선택한다고 했을 때 가방 중에서도 마틀라세 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구찌의 마틀라세 백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품 중 하나인데 구찌에서 여성용 가방을 떠올리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이미지인 만큼 구찌를 대표하는 상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